난파

<1. 가는 길>

 

김우진은 작품 "난파"를 쓰고 3개월 후에 자살했다.
김우진은 이 작품이 표현주의의 연극 형식이라 했다.
극단의 그 동안 작품은 거의 독일문학 이었고, 이를 그림연극 형식으로 무대에 올렸다.
극단의 열번째 정기공연으로 한국의 첫 표현주의 작품 "난파"를 결정하고 나서, 나름대로 작품을 해독하는데 적지않은 시간을 보냈다. 물론 김우진의 본래 의도와 다를 수도 있지만, 문학예술을 공연예술화하는 재창작자의 입장에서 확실한 정당성을 갖게 한다. "난파"의 구조와 내용을 꿰뚫었다고 자인하는 순간, 3개월 후 죽음을 앞두고 써 내려간 문장 하나하나에서 혼미한 정신분열증적인 시인의 상태를 통해 작가 김우진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작품을 원본 그대로 읽는다면, 이해하기 쉽지않다. 이게 바로 표현주의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문장의 내면을 들여다봐야 실마리를 풀 수 있다.

어느덧 이제 공연장으로 가는 길에 서있다.
연습을 시작한지 두 달이 지나가는 순간이다.
무대에 형상화하는 작업이 쉽지않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연습의 시작은 대본이 아닌 김우진 원본의 분석작업부터 시작했다. 빼고 붙이며 건너뛰고 다시 들어오는 내용의 대본을 이해하려면 행위자가 우선 원본을 이해해야 했기 때문이다. 2주간에 걸쳐 온갖 코드로 무장한 각각의 문장들을 해독해 내려갔다. 분석이 아니라 암호를 푸는 수준이다. 1보를 전진하면 다시 2보를 후퇴하는 전쟁놀이였다. 김우진이 원본 첫 페이지에 이 작품이 표현주의적 연극이라 썼듯이, 표현주의의 연극이 맞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우리 사회는 사실주의적 사고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에 이미 사실주의적 논리에 빠져든다. 문제는 이 작품이 사실주의적 논리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논리에서 빠져 나와 문제의 핵심인 열쇠를 찾아야 한다. 사실주의의 연극에서처럼 각 인물들의 성격묘사가 이 작품에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 보다는 단지 한 사람 시인의 성장과정에 순서대로 등장하여 그를 부추기고 실험하며 난파라는 길까지 안내하는 과정과 시인의 정신분열적 갈등을 구축해내는 역할이다.

표 현주의적 연극은 1910년경 독일언어권에서 표현주의의 정신 문화적 움직임과 맞물려 나타난다. 이 움직임은 특히 강하게 각인된 당시의 경제, 정치, 사회상황에 대한 반응이었다. 산업은 엄청난 생산으로 상업과 관련되어 번창했다. 통합된 독일제국은 서유럽열강에 비해 다소 늦게 식민지확장의 대열에 합류하고, 결국 1차 세계대전이 터진다. 패전한 독일제국은 승전국에 의해 완전히 무장해제 된다. 김우진의 "난파"에서도 느껴지는 바와 같이, 이런 배경 속에서 예술가들은 이전세대가 다가갔던 미학적인 자기실현의 길을 스스로 차단했다. 그들의 관심은 현실로 향했고, 이는 무엇보다도 그들의 감각 속에서 독자적인 자아의 반영으로 변했다. 이런 의미 속에서 예술작품을 창조적 개성의 표현(Ausdruck = Expression)이라고 이해했다. 주관주의로의 경향과 함께 표현주의의 예술가들은 세기전환기의 미적 감각을 따랐다. 그러나 그들의 창작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현실의 변화를 위한 요구로서 이해했다. 표현주의자들은 현존하는 것은 부정적으로, 그리고 다가올 것은 그와 반대로 완전히 긍정적으로 여겼다. – 혹시, 난파를 하게 되는 계기? -. 그들은 개혁의 길에서 점차적인 변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그들은 유일하게 혁명을 받아들였다. 이는 정치사회적 혁명은 물론 근본적으로 개인의 영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엘제 라스커 쉴러(Else Lasker-Schüler)와 카를 슈테른하임(Carl Sternheim) 등의 희곡작품이 표현주의에 속한다. 표현주의의 거장인 코코슈카(Kokoschka)는 회화뿐만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자신의 내면세 계와 상응하는 표현을 따랐다. 예술가는 사건을 의인화하면서 해결되지 않은 부분을 풀어놓는다. 그는 항상 계속적으로 자신의 위치에서 성과 애, 성애와 순애, 혼돈과 조화 사이의 결정이 요구되는 실존적 기본상황의 전형으로 농축된 인물을 세운다. "난파"에서도 김우진은 수직적 관계인 자신의 위치에서 성과 애, 성애와 순애, 혼돈과 조화 사이의 결정이 요구되는 실존적 기본상황의 전형으로 농축된 인물을 세운다. "난파"에서 김우진은 수직적 관계인 자신의 가족(어머니, 여러 계모, 아버지, 형제, 할머니)과 수평적 관계인 사랑하던 인물(간호원, 그리운 이름=Caro Nome=비비)을 무대에 내세우며, 자신의 해결되지 않은 정신적 실재상황을 그들로 하여금 풀어놓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