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한국연극 2000년 12월호 [REVIEW]

<극단 그림연극「변신>

글/이상란(연극평론가, 상명대 교수)

관객과 배우들. 이 두 주체는 때로는 포개지기도 하고 때로는 별개인 것처럼 보인다. 배우가 자기를 비우고 온전히 등장인물로 변하면 -사실상 이는 하나의 연극적 이상에 불과 하지만- 두 개의 주체는 하나가 되어 관객도 흡입하여 혼연일체로 만든다.

그러나 그러한 현상은 순간에 머물거나 혹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부분 불가항력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배우와 등장인물이 일정한 관계를 맺으면서 무대 위에 존재한다. 그것이 보통의 경우는 투명한 상태에서 겹쳐지거나 분리되지만, 인형극의 경우는 무대위의 두 개의 주체가 명백히 별개로 존재하면서 줄이나 막대기 손 등으로 연결되어 있다.

극단 그림연극은 카프카의 (변신)을 '그림연극'으로 형상화했다. 이현찬은 (변신)에 나그네라는 모티브를 앞 뒤에 첨가한다. 즉 프롤로그에서는 무대 후면 상단에 작은 스크린에서그림자인형과 줄인형으로 어디에선가 여행을하다 우연히 극중 공간으로 떨어지는 것을 형상화하고, 에필로그는 무대 중간의 막을 이용하여 배우가 작은 배를 들고 지나가는 그림자극으로서 항해를 표현한다.
이러한 표현방식은관객으로 하여금 거리를 가지고 삶을 여행으로 인식하도록 시도한다.

극중에서는 일상의 쳇바퀴 속에서 어느날 아침 하나의 갑각류의 곤충으로 변신해 버린그레고르가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사랑하는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는 과정이 인형극으로 형상화된다. 휑한 눈, 벌린 입의 인형으로 된 얼굴은 스스로와 주변에 대해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거대하고 부자유스러운 몸체는 침대에 흰 천을씌워 드러낸다. 그 안과 주위에서 손을 연결하여 인형과 침대를 움직이는 배우 이현찬은 자신의 인형인물에 몰입하거나혹은 바라보며 역할들을 살려낸다 그와 마주하는 배역들은 김영아가 맡아 인형을 놀린다.

인형과 그를 놀리는 배우들을 동시에 바라보며 필자는 여타의연극과는 또 다른 극적 환상에 빠지기도 하고인형과 배우의 에로틱한 관계 자체를 감상하는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카프카의 (변신)에서는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의 내면이 확대되어 묘사되고 그 실존의 위기는 강하게 독자들을 압도한다. 그러나 공연에서는 인형극의 형식을 빌어 그레고르의 절망에 관객을 동참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일정한 거리에서 관조하도록 한다. 뿐만 아니라 프를로그와 에필로그의 그림자극은 인생 전체를 여행으로 바라보도록 하기 때문에 그레고르의 절망이 긴 여정의 순간이 됨으로 상대화된다 따라서 그레고르의 죽음도 이 생을 떠나 먼 항해를 시작하는 출발점으로 처리되는 것이다.

이처럼 극단 그림극단의 이현찬 각색 연출의 (변신)은 카프카의 실존에 대한 물음과 절망을 '그림연극'을 통해 관조적으로 표현하면서 독특한 미학적 형식을 획득하는 흥미로운 공연이었다. 인형극이라면 아동의 전유물로 여기는 관객의 고정된 기대를 깨뜨리고 그로 인해 관객으로부터 소외된 이번 공연은 무대진에게 외로운 작업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