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아

필 로 시 어 터 ┃ 메 디 아

거대한 마스크를 비롯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와 춤으로 재해석한 극단 그림연극의 '메디아'

잔인한 마녀인가, 고통받는 여성인가

 

객석 2001년 7월

메디아'는 보는 이를 마비시키는 묘한 마력이 있는 연극입니다. 자신의 자식을 죽이는 귀기어린 메디아의 이미지는 '마녀'의 이미지를넘어서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메디아'는 기원전5세기 그리스시대에 씌어졌지만 오늘날에도 심심치 않게 무대에 오르는 작품입니다. 에우리피데스와 세네카를 비롯해 장 아누이 ·하이너 뮐러 · 크리스타 볼프까지 '메디아'에 손을 댄 극작가가 적지 않습니다. 케루비니처럼 오페라를 만든 이도 있습니다. 들라크루아 같은 격정적인 화가에게 메디아는 아주 매력적인 소재였죠. 문예회관 대극장에서는 지난 6월 2일부터 8일까지 무대에 올랐고(극단그림연극ㆍ연출 이현찬) 수원국제연극제에서는 일본 쿠 나우카 극단(연출 사토시 미야기)이?6월 7일부터 8일까지 작품을 올렸습니다.

그녀가 자식을 죽인 세 가지 이유

'메디아가 왜 자식을 죽였을까'에 대한 첫 번째 가능한 대답으로 르네 지라르 같은 학자는 '희생양' 논의를 내세웁니다. 아이들은 '메디아'의 분노의 희생양이었다는 것이죠. 메디아는 자신보다 강한 이아손과 남성 위주의사회에 대항하는 대신에 자신의 아이들을 죽였다는 견해입니다. 남편이 미워 자기 자식을 죽인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일입니다만.두 번째 가능한 답은 그리스 비극의 전형성에서 힌트를 얻습니다. 명을 구해준 은혜를 잊고 수치와 능욕을 안겨준 이아손에게 메디아가 받은 대로 돌려주기 위하여 아이들을 살해했다는 논리입니다. 여기서 잠깐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약스' '오이디푸스' '필록테테스' '안티고네' '엘렉트라' 같은 소포클레스 작품의 주인공들은 대개 왕족이거나 영웅으로 명예를 무겁게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때로 그것이 지나쳐 그들은 목숨을 버리기조차 합니다. 그리스 비극의 권위자 버너드 녹스 같은 이는 이를 영웅적 기질로 정리했습니다. 그리스 비극의 영웅들은 친구에겐 베풀고 적에겐 복수하는 원칙'을 목숨만큼 소중히 여깁니다. 메디아에게도 이러한 영웅적인 기질과 확신에 찬 태도, 타협 불가능한 강한 성격이 발견되니 만큼 이런 답도 틀린 것은 아닐 테지요.

세 번째 답. 남편에게 버림받은 메디아는 벼랑 끝까지 몰려 더 이상 의지할 곳조차 없는 상태입니다. 이방여자와의 결혼을 무효화하는 당시의 시민법을 상기해본다면 메디아에게 닥칠 불행의 크기를 가늠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메디아는 왕으로부터 추방 명령까지 받은 상태입니다.

쿠 나우카 극단이 메디아를 한국 여성으로 결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연출가 사토시 미야기는 중심과 주변 남성과 여성을 가르고 구분짓는 남성ㆍ여성중심의 논리를 연극 속 설정으로 끌어들여' 메디아'가 여전히 우리 시대에도 의미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작품임을 확인합니다. 나아가 그는 만약 메디아의 아이가 아들이 아니라 딸이었다면 메디아가 자식을 죽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을 합니다. 그리스 사회가 바라는 여성성은 아들 낳는 기계였으니까요. 배타적이고 편협한 남성 위주의 가부장 사회가 메디아를 잔인한 악녀로 몰아갔다는 것이죠.

메디아를 신화 속 악녀의 자리로 내쫓은 것은 이아손으로 대표되는 남성들의 계략이 아니었을까 짐작을 해봅니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한 이방여성 메디아의 급진성이 신화를 통해 왜곡된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죠. 메디아의 상당한 의학 지식도 그리스 신화는 먀녀의 필수품 정도로 격하시키고 있습니다. 메디아가 야만스럽고 잔인한 신화 속 인물로 떨어진 데는 이런 이유들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메디아는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간 여성으로 보입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통상 장인과 사이될 사람이 결혼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메디아는 이아손과 직접 결혼서약을 함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남성 시민의 역할과 같은 자리에 놓습니다. 페미니스트적 시각에서 보자면 메디아는 노라의 대선배로 내세울 수 있는 선구자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메디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추방령과 남편의 배신이 전부입니다. 그녀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무릎을 꿇고 크레온에게 추방령을 철회해줄 것을 애원하는 메디아의 모습은 당대 사회의 여성이 처했던 절박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아닐는지요. 표독스러운 마녀로 파묻힐 뻔했던 신화 속의 메디아를 구해낸 에우리피데스의 '메디아'는 여전히 우리 시대의 이목을 사로잡는 문제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글ㆍ이종도 기자(poeta@) 사진ㆍ정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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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6월 9일 토요일경향신문

시각적 표현이 돋보인 한국의 "메디아"

비극적 전설 '二色무대'

아들살해 어머니 '메디아' 한ㆍ일 두버전

어찌 어머니가 아들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그리스신화의 '메디아' 이야기는 일어날 수 없는,일어나서도 안되는 사건을 다룬다.

그래서 본질적인 인간조건을 탐구하는 동서고금의 예술가들은 그 비극적 전설 속에서 인류 차원의보편적 상징과 은유를 읽어내려는 시시포스적 노고를 거듭하고 있다.

그 '메디아'가 한·일 연극의 두 버전으로 무대에 올랐다.

극단 그림연극은 8일 서을 동숭동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막을 내린 '메디아'에서 전설의속뜻을 철저히 시각적 언어로전달했다. 그런가 하면 제5회수원화성 (화성) 국제연극제초청작인 일본극단 Ku Na'Uka(러시아어로 '과학을 향하여'라는 뜻) 시어터 컴퍼니의'메디아'도 6∼7일 수원 화성행궁에서 선보였다, 한국의 '메디아'가 남성폭력의 역사와 해체를 시각언어로 선연히 보여주였다면일본의 '메디아'는 두 문명간의 갈등과 가부장제 시스템을 깊이있게 해석한 뒤 오늘날 한·일 양국의 문제로 환치한 연극이다, 한국의 '메디아'는 연극의 극적 구성과 안무를 예술적으로 결합시킨 독일의 '탄츠테아터'(Tanztheater)기법과 가면·인형을 사용한 시적 이미지 표현 등 때때로 시각을 압도하면서 인간의권력욕으로부터발생하는 인류의 반복적 비극을 적나라하게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체 3부로 구성된 한국의 '메디아'는 제1부에서텍스트 없이 흰 천과 흰 마스크를 쓴 배우들의 몸짓과 군무만으로 핵전쟁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조차 권력투쟁에 매달리는 장면을 강렬히 전한다.2부에서는 정수리에 가면을 쓴 4명의 코러스와 함께 메디아의 줄거리가 펼쳐지는데 두 아이를 인형으로 처리한 점이 특징적이었다. 3부에서는 무대의 벽에 장식됐던 거대한 인형이 움직이는 장면에다 8개의 흰 가면에서 피눈물을 쏟아내는 인상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연출자 이현찬씨는 "메디아의 자녀 살해는 그녀를 버린님성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자 신의 씨·자손마저 없애 영원한 폭력의 순환구조를 끊고자 한 행위였다"면서 "그럼에도 인류는 그들의 역사를 지속할 수밖에 없음을 다양한 사물(material)을 통해 표현했다"고 말했다, 일본의 '메디아'는 아들을 죽인 어미의 행동에 대한 문명론적 해석이 돋보인다. 연출자 사토시 미야기는 "만약 메디아의 아이가 아들이 아니고 딸이었다면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면서 "어쩌면 그녀는 남성들이 가족·사회·역사·권력을 지배 ·상속하는 가부장제 시스템을 파괴하기를원했다"고 밝혔다.

김중식기자 uy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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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2001년 5월30일 수요일 제4032호

극단 "그림연극"의 "메디아"

몸짓으로 메시지
'보여주는 연극'

 

`보여주는 연극`이 무대에 오른다. 6월 2일부터 8일까지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메디아`는 춤이나 배우의 얼굴표정 등을 통해 메시지를 `시각`으로 전달하는 연극이다.
대사를 앞세우는 전통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관객의 판단에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 무척 새로운 시도다.

극단 `그림연극`이 마련하는 이번 무대는 독일의 춤연극(Tanztheater)기법을 적극 차용했다. 춤연극기법은 연극적 구성에 춤이 녹아든 형태로 세계적인 안무가 피나 바우시가 처음으로 선보여 주목을 끌었다.

춤과 연극이 별도의 경계선 없이 하나의 줄거리에 자연스럽게 조화돼있는 것이 특징. 따라서 관객은 보는 시각과 상황에 따라 각자 극의 메시지를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다. 연극을 `골치아픈 것`이라고 생각하는 관객이라면 한번쯤 관심을 가질 만한 무대다.

메디아는 고대 희랍전설에서 유래한 상상속의 여성이다.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뒤 증오심으로 인해 아이까지 죽이고 마는 비극의 여인이다. 이번 작품에선 희랍시대의 원시적인 문화를 현대 문명에 대비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내용전달은 압축대사로 처리하고 나머지는 배우가 쓴 마스크나 나체, 인형 등으로 시각화한다.

연출가 이현찬은 독일의 국립연극예술대학 인형예술과를 졸업한 학구파. 재학 당시 DAAD상(독일에 유학중인 우수외국인에게 주는 상)을 받기도 했다.

이씨는 ?언어를 배제하는 이유는 그것이 배우와 관객의 커뮤니케이션을 오히려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극단 `그림연극`은 그간 인형연극 `변신` `소녀의 꿈` 등을 선보여 조용한 주목을 받아왔다.

/심정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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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2001/05/29

무용언어와 대사·노래 결합

고대 희랍 비극의 재해석 극단 그림연극 '메디아'

고대 희랍 비극이 살아 온다. 극단 그림연극의 '메디아'는 희랍의 설화를 인간 욕망의 관점으로 재해석 해낸 무대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가족을 위해 희생했던 여인 메디아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뒤, 증오심에 불타 피의 복수에 자신을 맡긴다. 남편은 물론 두 아이마저 살해하는 여인의 처절한 복수가 3부에 걸친 무대로 환원된다.

극단 그림연극은 1999년 창단이래 '변신' '막베스' 등을 통해 연극에서 시청각 언어의 가능성을 추구해 오고 있다.

이번에 펼칠 춤연극(Tanztheater) 역시 무용 언어를 연극적 대사와 노래와 결합해 물체극과는 색다른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새로운 공연 양식이다.

현대 무용가 피나 바우쉬가 창안해 인간이 사물을 어떻게 움직이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가를 무대화한다.

남성의 나체, 거대한 인형, 피 흘리는 마스크 등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와 하이너 뮐러의 '메데아 자료'에서 발췌한 시적 대사가 혼재한다.
원시적 제의를 통한 씻김의 양식이다. 기괴한 마스크를 쓴 코러스와 합창, 3㎙ 크기의 인형 3개 등의 장치가 남성에게 짓밟히는 여성의 질곡을 즉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장병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