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푼짜리오페라

『서푼짜리 오페라』에 나타난 음악적 '낯설게 하기 효과'

 

김미선(동아방송대학 교수)

음악이 없는 브레히트의 연극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브레히트의 거의 모든 작품에는 그 비중이 크건 작건 음악이 동반된다. 노래모음집을 발표할 정도로 어려서부터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보였던 브레히트가 직접 작곡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뜻이 맞는 작곡가와의 공동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공동작업의 과정에서도 브레히트는 가사를 제공해주는 작가로서의 역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출자로서 작품의 의도나 전반적인 구상 및 음악의 역할 등에 대해 의논하고 공연이 끝날 때까지 함께 작업하며 배우들에게 이상적인 음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긴밀한 연관 관계를 유지하여 기존의 작가와는 전혀 다른 작업 방법을 취하였다. 무엇보다 브레히트의 서사극이 종래의 전통극과 구별되는 중요한 요인으로 극적인 요소보다 시적인 정서의 성격을 꼽을 수 있는데, 이러한 시적인 표현을 위해 브레히트는 그의 대부분의 작품에 음악을 사용하였으며 특정한 장면이나 작품 전체에 음악을 사용함으로써?낯설게 하기 효과의 기법을 극대화하기도 하였다. 또한 음악의 도움을 빌어 브레히트는 그의 사회주의 이념과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격렬한 비판 등으로 자칫 관객들에게 거부감을 느끼게 만드는 위험에게 벗어날 수 있었고 더 나아가서는 연극적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어, 음악이 없는 브레히트의 서사극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음악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그러나 악기만으로 연주되는 절대음악을 혐오할 정도로 싫어했던 브레히트에게 진정한 의미의 음악은 언어가 있는 성악곡이었다. 무엇보다도 오케스트라 반주의 전통적인 오페라에 대한 그의 견해는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의 첫 번째 부인인 마리안네 초프(Marianne Zopf)가 오페라가수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매우 의아스러운 일이지만, 그는 철학적 사고와 사회 비판적 인식이 배제된 미식가적kulinarisch 즐거움만을 제공하는 종래의 오락적 기능으로서의 오페라를 그 존재 자체부터 자본주의 체제의 병폐로 단정하였으며 보다 나은 사회적 변화를 위해 오페라의 파괴를 주장하였다. 특히 그 당시 오페라계를 지배하고 있던 바그너(Richard Wagner)와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오페라는 현실 비판이 없고 관객의 감정 이입을 강요하는 부루조아적 사치품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어 비판의 표적이 되었다. 이러한 브레히트의 음악에 대한 극단적 견해는 재즈, 오페레타, 카바레, 샹송, 민요 등 그가 추구하는 단순하고 대중적인 음악을 종래의 복잡하고 기교적인 전통 음악인 무직(Musik)과 구별하여 '미죽 Misuk'이라 칭한 데서 잘 드러난다.

브레히트와 함께 작업한 작곡가로는 힌데미트(Paul Hindemith), 바일(Kurt Weill), 아이슬러(Hanns Eisler), 데싸우(Paul Dessau), 바그너-레게니(Rudolf Wagner-Regeny)등이 있으며 이러한 작곡가들과의 만남은 브레히트에게 커다란 행운이었다. 특히 바일과의 공동 작업은 오페라사에 전환점을 마련해준 『서푼짜리 오페라』외에도 『마하고니 시의 번영과 몰락 Aufstieg und Fall der Stadt Mahagonny』은 최초의 초현실주의 오페라로, 3월 라이프치히에서 초연되어 그 당시 음악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게이와 피퍼쉬의 『거지 오페라 Begger's Opera』가 정확하게 200년 뒤인, 1928년 초연 되면서 오페라사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한?브레히트와 바일의 『서푼짜리 오페라』는 오랫동안 연극과 음악, 그 어떤 양식에 속해야 하는지에 대해 학자들의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큼, 연극과 음악 그 어느 한 쪽에 편중되어 다루기 어려운 종합예술로서의 의미가 큰 작품으로 오늘날 20세기 음악극의 전형으로 수용되고 있다.

브레히트는 그의 서사극에서 '낯설게하기 효과'의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역사가 만들어낸 일상화된 관습의 모순에 대한 무의식을 의식화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객관화된 비판 의식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말을 매개체로 하고 있는 그의 서사극에서 음악의 사용은 이러한 그의 의도에 가장 효과적일 뿐 아니라 자칫 건조하고 경직된 그의 정치적 이슈와 사회적 이념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즉 감성의 괴리를 단축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영국의 게이와 피퍼쉬가 만든 『거지 오페라』가 그 당시 귀족을 위한 보수적인 장르인 기존의 오페라를 패러디 했듯이 독일의 브레히트와 바일이 만든 『서푼짜리 오페라』 또한 거지들이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오페라를 무대에 실현한, 즉 거지들의 오페라가 아니라 거지들을 위한 오페라이다. 또한 양식적인 면에서도 기존해 있는 오페라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전통적 오페라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개혁을 겨냥하고 있어서 만일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이 제목만 보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오페라를 기대하고, 미식가적인 자세로 관람한다면 분명 낯선 공연이 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음악극 창조의 구심점이 되는 것이 '송 Song'이다. '송' 이라는 명칭 외에도 발라드(Ballade), 모리타트(Moritat), 리트(Lied) 등의 다양한 용어를 사용한 송 음악은 기존의 복잡하고 기교적이며 난해한 창법의 아리아와는 달리 단순한 민요적 선율의 유절 형식으로 되어있어 청각적으로 누구나 쉽게 수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으며 이는 상대적으로 가사의 내용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준다. 더우기 『서푼짜리 오페라』에서 폴리가 부르는 '해적부인 제니', '바르바라의 노래'를 비롯한 많은 곡들이 등장 인물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줄거리와는 관계없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낯선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함으로써 배우가 등장 인물에 몰입하는 기존의 형태에서 거리감을 조성하여 배우 자신의 이야기이자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로 유도하고 있다.

대부분 '송'을 부를 때는 뒤의 배경에 노래의 제목이 쓰여진 현수막을 걸거나 배우들이 직접 현수막을 들고 등장하며 종종 배우에게 집중 조명을 비추거나 막의 닫혀진 커튼 앞에서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관객들이 극의 내용에 몰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전통극에서는 보기 힘든 낯선 방법이다.

'송'양식의 모델이 된 16마디로의 단순한 선율의 반복인 '매키 메서에 대한 노래'의 '블루스 Blues'(Nr.2)를 비롯하여 재즈의 변형인 '폭스트로트 Foxtrott'(Nr.7), '탱고 Tango' (Nr.13), 어깨와 몸을 떨며 추는 '쉼미 Shimmy'(Nr.14) 들도, 17세기 런던이라는 이 작품의 배경과는 전혀 연관 지울 수 없는, 그 당시 대중들에게 유행하는 춤들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일반 오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낯선 템포와 리듬의 설정은?관객들에게 그들의 일상과 같은 분위기에서 의식과 무의식 세계의 대조를 스스로 자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송'음악의 화성 또한 선율이나 리듬처럼 지극히 고전적인 단순함 안에서 가끔씩 나타나는 기본진행에서의 일탈과 마치 실수한 것처럼 느끼게 하는 낯선 음들은 관객에게 낯설게 다가가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현악기가 전적으로 배제된 색소폰, 트럼펫, 벤죠, 팀파니, 하모니움으로 된 재즈 밴드의 악기 편성 또한 기존의 오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낯선 음향의 구성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오케스트라의 배치도 무대 위에 설정하여 조명을 비춤으로써 관객들에게 노출시키도록 한 연출의 의도 또한 '낯설게 하기 효과'를 겨냥한 기법이다.

바일과 브레히트가 『서푼짜리 오페라』를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미식가적 취향에 따른 기존의 전통적인 오페라의 개혁이었고?'낯설게 하기 효과'를 통해 그 모순의 가면을 하나씩 벗겨나감으로써 애초의 진실된 모습을 찾기 위한 끈질긴 작업으로, 그 공감대를 가장 아래로까지 넓혀 대중에 가까이 다가가 시대가 안고 있는 모순과 불합리성을 함께 인식하게 함으로써 20세기 음악극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을 뿐 아니라 단순하고 감미로운 음악의 '송'은 민중의 사회적 의식을 고취시키는 데에도 큰 몫을 하여 예술의 힘이 사회의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