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푼짜리오페라

오마이 뉴스 2002년 11월 26일

변화가 두려운 기득권층에 대한 조롱
[연극리뷰] 서푼짜리 오페라(작 브레히트 / 극단 그림연극 / 연출 이현찬)

 

한상언 기자 paxcinema@hanmail.net

연극 역사에 있어서 가장 영향력 있는 극작가를 꼽는다면, 첫 손가락으로 셰익스피어가 꼽힐 것이고 다음으로 브레히트가 꼽힐 것이다. 그 뒤는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지만 이 두 사람만은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셰 익스피어는 16세기에 활동한 극작가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지금 바로 공연을 한다해도 수정이 필요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 또한 작품 속 주제나 인물의 표현은 시대와 장소에 상관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보편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16세기 작가인 셰익스피어를 곧잘 동시대의 작가로 간주할 때가 많다.

브레히트는 현대연극의 아버지로, 서사와 극이라는 서로 대립되는 개념을 이용하여 서사극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냈다. 서사극은 극적 환상을 깨버리는 소외효과를 통해 발현되는데 이는 관객이 무대의 사건에 대해 친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객관화를 통해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브레히트의 서사극은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많은 극작가들과 이후의 극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알과 핵 소극장에서 상연되고 있는 〈서푼짜리 오페라〉(극단 그림연극 / 연출 이현찬)는 브레히트의 초기 대표작으로 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은 극음악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작품 속 음악은 이탈리아 오페라처럼 화려하고 몽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대본을 전제로 대본과 대결하는 서사적 역할을 한다. 이 공연은 자막을 이용하거나 관객에게 말을 거는 등의 "소외효과"를 맛 볼 수 있다.

〈서푼짜리 오페라〉는 존 게이의〈 거지오페라 Beggars Opera 〉(1728)를 토대로 쓰여졌다.
런던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기업화된 거지집단, 악명 높은 폭력조직, 폭력조직을 비호하는 경찰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폭 력배 메키는 구걸을 기업화한 피첨의 딸 폴리를 유혹하여 결혼하게 된다. 메키는 피첨의 적이 되고 피첨에 의해 경찰에 밀고된다. 하지만 경무총감 브라운이 메키의 친구이기 때문에 좀처럼 체포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정부의 배반으로 마침내 체포되어 교수대로 보내졌으나 처형 직전 여왕의 특사로 석방된다.

〈서 푼짜리 오페라〉를 제작한 극단 그림연극은 이미지나 인형과 같은 도구를 이용하여 연극을 만들어 온 극단이다. 극단의 대표이자 연출을 맡은 이현찬은 독일에서 인형연극을 배운 인형연극 전문가인데 이번 공연은 그가 연출한 전작들과는 달리 인형과 같은 도구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고 작품을 만들었다.

공연은 배우들이 객석을 돌아다니며 구걸과 호객행위를 하면서 시작된다. 관객석이 공연공간이 되면서 관객을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 참여시킨다. 관객이 연극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극을 통해 계속 이루어진다. "엽전"은 월드컵 때 불렀던 "대한민국" 박수를 유도하고, 피첨은 관객을 직접 무대로 불러 올린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관객을 참여시키는 것은 관객을 연극의 사건과 분리시켜 객관화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브레히트는 이와 같은 "소외효과"를 통해 관객이 냉철한 이성으로 사건을 판단하고 사고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시도는 관객을 소외시키는 역할이 아니라 극에 재미를 불어 넣고 관객이 더욱 공연에 몰입하는 반대의 역할을 한다. 이는 브레히트가 연극을 만들던 시대와는 달리, 현재 이런 기법이 많이 사용되어 관객이 심각히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연극의 일부, 이벤트의 일부로 이것을 받아들인다.

이 작품은 앞서 언급했듯이 극음악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쿠르트 바일이 작곡하고 브레히트가 노랫말을 만든 여러 노래들이 연극의 주요 부분마다 사용되었다. 이 노래들을 이탈리아 오페라나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단순하면서도 일탈적인 리듬, 멜로디, 화성은 번역체의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사와 맞물려 독특한 느낌의 소외효과를 만들어 냈다. 특히 배우들이 가성으로 부르는 노래는 공연 초반 관객들을 당황시켰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어 노래가 귀에 익으면서 처음과는 달리 노래가 끝날 때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박수를 치기도 했다. 극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무대 위에 피아노를 설치하여 이은진이 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곡을 연주했다. 반주자는 공연이 끝나고 무대 인사 때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이 공연의 무대는 무대 뒤의 배경막과 무대에 다용도로 사용되는 이동식 단이 전부이다. 배경막은 20년대 유행하던 판화들이 벽화처럼 그려져 있고, 그 중앙에는 프로젝트로 장면과 노래의 제목을 알려주는 자막이 비춰진다. 무대 전환은 간단한 소품과 이동식 단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서푼짜리 오페라〉의 마지막은 교수형에 처해질 메키가 여왕의 갑작스런 사면으로 살아나게 되는 장면이다. 미첨과 메키는 화해하고 극 속의 모든 사람들이 만족해하며 "모든 악은 저절로 얼어져 버린다"라는 노래를 부르며 행복한 결말로 극이 마무리된다. 모든 사건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관객은 극의 진행 방향과는 다른 갑작스런 반전에 당황해한다. 〈서푼짜리 오페라〉의 이와 같은 결말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기득권층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자 브레히트의 사회에 대한 조롱이다. 브레히트는 관객에게 생각거리를 던져 주며 이 이상한 결말에 대해 집에 가서 생각해보라고 가르치고 있다.


2002/11/23 오전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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