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척어멈

<작품 "억척어멈과 그녀의 아이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나찌를 피해 1939년 스웨덴에 망명하며 5주만에 작품 "억척어멈과 그녀의 아이들"을 완성했다. 망명이란 환경은 무엇보다도 언어의 소통이란 장벽일 것이다. 본래 브레히트는 부인 헬레네 바이겔(Helene Weigel)을 위해 벙어리인물 <카트린>을 만들었다. 그렇게 되면 스웨덴어를 말하지 않고도 그곳에서 연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작품은 스웨덴이 아닌 스위스의 쮜리히 극장에서 1941년 4월 19일 초연 되었다.

독일에서는 1949년에야 비로서 처음으로 무대에 올려졌다. 작품은 베를린의 독일극장(Deutsches Theater)에서 조금의 수정된 대본으로 공연되었다.

1955년 브레히트는 "억척어멈"을 영화화 하고자 노력했지만 무산되고 말았다. 그가 죽은 4년 후 1960년에야 영화화되었다.

억척어멈이란 인물은 브레히트의 창조물이다. 사실 그는 두 작가의 작품을 참조했다. 요한 루드비히 루네베륵(Johan Ludvig Runeberg. 1804-1877)의 장사꾼어멈 "로타 스베르트(Lotta Svard)"와 30년 전쟁의 증인인 억척어멈을 생생하게 묘사한 김멜스하우젠(Hans Jakob Christoffel von Gimmelshausen. 1622 - 1676)이 그것이다.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적 배경의 정확한 지식은 필요하지 않다. 다만 30년 전쟁(1618-1648)의 발생이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는 도움을 줄 수 있는데, 이 전쟁의 관점은: 1.카톨릭과 신교도 사이의 분쟁, 2. 유럽 패권들 사이의 분쟁, 3. 군인과 농부간의 분쟁으로 집약된다.

<브레히트 연극>

브레히트의 연극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반아리스토텔레스극과 서사극이라는 두가지의 개념을 간단하게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반아리스토텔레스극"의 개념으로 브레히트는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기 보다는 이해를 생각했다. 그래서 브레히트의 경우에 한 개인의 운명을 전개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인 관계와 가능성에 전개의 중점을 둔다. 그래서 장면전개가 가볍게 펼쳐진다. 모든 이는 저마다의 삶이 있다. 작품 "억척어멈"처럼 12년 이상의 이야기가 매 순간 새로운 장면으로 이어지거나 연결된다. 서사 형태의 연극은 관객을 관찰자로 만들고, 그들의 활동을 일깨우며 스스로에게 결정을 요구한다. 작가는 관객에게 줄거리 속으로 몰입 시키기 보다는 마주 편에 세우고 그들에게 지식을 일깨우고 싶어한다.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작가는 관객에게 노래, 합창, 주석을 포함한 말을 암시하는 등, 수많은 이야기 방식의 요소를 사용한다. 이러한 요소는 검소하고, 불필요한 무대장치에 도움을 준다. 이를 위해서 브레히트는 낯설게 하기(Verfremdungseffekt)란 개념을 빌어왔다. 습관적인 것을 평범하지 않은 방법으로 실현함으로써 관객에게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끔 했다.

<작가에 대하여>

브레히트의 연극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반아리스토텔레스극과 서사극이라는 두가지의 개념을 간단하게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억척어멈의 줄거리>

주인공인 억척어멈 이라 불리는 안나 휘어링은 세 아이와 함께 포장마차를 끌고 전쟁이 벌어지는 나라마다 이동하며 생필품을 판매하며 삶을 연명한다.
전장이 삶의 터전인 억척어멈에게 평화는 곧 삶의 수단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전쟁터는 억척어멈에게 유일한 희망의 공간이다.
용감한 장남 아일립과 성실한 막내 슈바이져카스, 벙어리인 딸 카트린은 억척어멈의 중요한 삶의 터전인 전쟁터에서 죽어가게 된다.
자식들을 모두 죽음으로 떠나보낸 증오스러운 전쟁터지만 그래도 유일한 삶의 터전이기에 자식을 모두 잃은 슬픔을 뒤로 한 채 포장마차를 끌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