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아

연출의 글

 

연출 : 이현찬(극단 그림연극 대표)

작품은 3부로 구성된다.

1부 프롤로그는 텍스트 없는 움직임으로 탄쯔테아터 형식을 빌어 반복적인 세계의 역사를 표현하고, 메디아를 잉태한다.

2부는 텍스트를 사용하여 4명의 코러스와 함께 비극 메디아의 이야기가 함축적인 가면과 연기로 표현된다.

3부는 에필로그로 커다란 인형과 마스크를 사용하여 메디아가 바라볼 또 다른 세계를 이미지로 정리한다.

프롤로그는 원폭으로 세계의 종말이 찾아온 이후이다. 원폭으로부터 살아남은 인간들은 오랜 시간동안 서로 뭉쳐진 상태로 하얀 천 속에서 얼어붙어 있다. 하얀 천 속의 배우들은 조각작품의 하나로서 조명의 변화에 따라 실루엣으로 보인다. 살아남은 인간들이 천 속에서 서서히 깨어나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앞을 보지 못한다. 얼굴에는 흰 천과 방독면이 씌어져 있다. 음향으로 전투헬리콥터 소리가 난다. 그들은 전쟁으로부터 몸을 피하고 사이렌소리가 멈추자 무대의 가운데로 모여서 방독면을 벗어 던진다. 손으로 바닥을 더듬어 석필을 주워 얼굴을 덮은 흰 천에 입술과 눈을 그린다. 그들의 움직임은 더욱 더 강렬해진다.
모두가 다 최고 권력자가 되려한다. 그들은 얼굴을 가리고 있던 흰 천을 벗어 던진다. 무대 곳곳에서 현대의 문제점인 마약, 동성애, 살인이 발생한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 여성이 계단의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계단 밑으로 생명과 탯줄을 나타내는 붉은 천을 쏟아낸다.
이렇게 프롤로그는 계속 반복되는 인류역사의 문제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2부는 프롤로그의 어두웠던 어른들의 이야기와는 달리 경쾌한 음악과 함께 메디아의 아이들이 인형으로 등장하고 분위기가 전환된다. 유모는 비참한 메디아를 느끼지 못하고 즐거워하는 두 아이들을 보며 슬퍼한다.
그러는 동안 남편 야손의 배반에 슬퍼하는 메디아가 술래잡기장난을 하며 무대로 등장한다.
위협을 느낀 크레온 왕은 메디아를 찾아와서 아이들과 함께 왕국을 떠날 것을 명령한다. 간곡하게 부탁하는 메디아를 불쌍하게 여긴 크레온은 메디아를 머물도록 허락하는 실수를 범한다.
4명의 코러스는 크레온의 부당함에 분노하고 메디아에게 복수할 것을 주문하며 야손의 등장을 알려준다. 권력에 눈을 뜬 남편 야손은 왕의 딸인 크레오사와 결혼하는데 대한 정당성을 주장한다. 야손의 주장은 남성우월주의를 대표하는 말로서 남녀의 성별을 떠나 크게 해석한다면 히틀러의 인종차별적인 민족주의와 다름이 없다. 코러스는 메디아에게 용기를 주고 야손과 크레온, 크레오사에게 보복할 수 있는 처절한 방법을 제시한다. 크레오사가 야손과 결혼식에 입을 신부복에 독을 묻히는 장면을 어릿광대들의 춤처럼 표현한다. 야손과 신부인 크레오사의 장면이 그림자 극을 통해서 실루엣으로 표현된다.
야손은 선물로 신부인 크레오사에게 메디아가 준 독 묻은 신부복을 전달하고 입혀준다. 결혼식 전날 밤은 피로 물들고 밤하늘을 찢는 딸의 비명소리는 아버지 크레온마저 죽음으로 불러들인다. 놀란 야손은 모든 것이 야만인 메디아의 소행임을 알아차리고 그녀를 찾아 헤맨다.
유모는 메디아가 아이들을 죽였다고 소리를 지른다. 메디아는 계단 위의 문을 열고 조용히 등장한다. 그녀의 두 손에는 투명한 유리그릇이 있고 그 속에는 아이들의 잘린 머리가 담겨져 있다.
조명은 붉은 빛으로?메디아에게 집중되고 음악이 흐른다.

3부는 작품의 에필로그로서 또 다른 역사의 시작을 표현한다.
무대는 다시 처음처럼 안개로 덮이고 무대의 벽에 장식되었던 커다란
인형 3개가 보이지 않을 만큼 서서히 움직인다. 커다란 인형은 슬라이드에 따라 다른 이미지로 보여지고 더욱 효과적으로 메디아의 비극적인 내용을 고조시킨다. 커다란 인형은 무대 뒤로 사라진다.
무대 앞의 오케스트라피트가 올라오면 이 작품의 마지막 그림으로 무한대를 나타내는 8개의 얼굴이 생각에 잠기고 피눈물을 흘린다.
음악이 흐르고 무대는 점점 어두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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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한 메디아의 줄거리는 : 메디아는 콜키스의 공주이자 마녀이다.
빼앗긴 왕위를 되찾기 위해 황금의 양모(Golden Fleece)를 구하러 온 야손이 콜키스에 왔을 때, 그를 사랑한 메디아가 국가의 보물인 양털을 찾게 도와주고 함께 콜키스를 탈출한다. 아버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뒤쫓아오는 동생을 토막내어 바다에 뿌림으로서 벗어나기를 성공한다. 야손과 결혼하여 그의 고향으로 갔을 때, 야손과 그의 아버지 아이손의 적인 펠리아스를 살해하기 위해 펠리아스의 딸들에게 재생의 마법을 보여준다. 그녀의 마법을 믿은 펠리아스의 딸들은 아버지를 칼로 썰어서 끓는 가마솥에 넣고 살아나기를 기대하지만 죽은 펠리아스는 되살아나지 않는다. 그 뒤 메디아는 야손과 함께 코린트로 도망가고, 그곳의 국왕 크레온의 딸(크레오사)을 아내로 삼으려 하자, 메디아는 마법을 써서 왕녀와 국왕을 죽이고 자기 아이들까지 죽임으로써 남편에게 보복한다.

고대 희랍전설인 메디아(Medea)의 이 이야기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희생했던 한 여인이 남편으로부터 유린당한 후 자신의 두 아이를 살해하고 증오심으로 참혹한 복수를 한다는 비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에게는 고대 그리스의 작가 유리피데스의 메디아(BC 431년경)가 잘 알려져 있고 그밖에 세네카, 장 아누이, 하이너 뮐러, 크리스타 볼프 등등의 작품이 있다.

이번 작업에서 자료로는: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일 된 후"나는 더 이상 자본주의 속에서 글을 쓸 것이 없다"라고 말한 동독의 작가 "하이너 뮐러"가 쓴 "메디아 마테리알"을 2부의 주요 텍스트로 사용하게 된다.

극단 그림연극은 이번 작업에서 고대 희랍의 전설인 메디아라는 비극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고, 다양하고 폭넓은 연극적 요소를 가미하여 재구성하였다.
작품의 문학적인 내용 부분에서 나에게 더 두드러지는 것은 사랑과 권력의 욕망으로 점철된 것이 세계의 역사라는 것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래서 작업의 커다란 울타리로 피 흘리는 세계를 잡고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