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청

[인터뷰]낯선 언어로 대중에게 말을 거는, 연극인 이현찬
극단 그림연극의 대표·연출·연기를 겸하고 있는 이현찬

2012-11-15
김진경 기자 jjanga2020@yhenews.co.kr

Q. 다중매체연극이나 마임 등과 같은 문화는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편인데 ‘그림연극’이란 흔치 않는 형식을 택한 이유 또는 의의는 무엇인가요?

A.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로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커튼콜하고 분장을 지우며 거울을 보고 물었습니다. 떠들어대는 사실주의 연극이 공허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나의 연극을 찾고 싶었고, 진실한 연극을 하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도움을 줄 사람이 없었지요. 정신적인 연극. 눈으로 말하고 관객과 소통하는 연극은 없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 연극은 지금도 답은 없지요. 그 후에 독일 유학을 떠났습니다.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그림연극은 독일어 빌더테아터(Bildertheater)로 그림의 연극이란 뜻입니다. 한국에서 정극이라 부르는 사실주의나 자연주의의 연극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사실주의의 연극은 문학의 희곡이 지배합니다. 글자의 조합으로 줄거리를 형성하고 관객은 이해합니다. 그림연극은 보이는 것. 즉, 그림들의 나열입니다. 그것을 이데아라고 하는데 거기에는 육안이 있고 영혼의 눈이 있습니다. 그림연극을 하면서 이것이 내가 찾던 연극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Q. ‘그림 연극’처럼 낯설고 독특한 형식을 받아들이는 관객들을 위해 제작진으로서 전할 수 있는 관람Tip 또는 접근 태도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A. 한국 사람들은 스토리텔링에 익숙해있어서 드라마처럼 줄거리를 엮어나가려고 한다. 그런데 그림연극과 같은 경우는 언어 이외의 새로운 표현매체들을 이해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언어가 없는데 어떻게 이해하겠나? 작가가 그려놓은 그림은 관객은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하게 된다. 따라서 관객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로버트 윌슨과 같은 사람도 관객의 해석을 중요시하지 않나?

이번 작품을 하면서 특별히 많이 느낀 부분은 오히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같은 어린 친구들이 우리 작품을 더 잘 이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들은 우리 작품을 관람하면서 해석하기 보다는 직감적으로 받아들였다. 우리가 표현하는 것을 바로 받아들였다.

Q. 이전에는 심각하고 어두워 보이는 내용이 주로 다루었던 것 같은데 이번 연극에서 희망이나 행복 등의 주제를 다루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A. 특별히 이전 작품과 다른 것은 없다. 이전에도 사실 희망, 행복 이런 것들을 추구해왔던 것 같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하지 않나? 다만 이번 작품에서는 관객들이 좀 더 이해했으면 하는 욕구가 많았었고, 대중적으로 접근해보고 싶은 생각이 컸다. 물론 관객이 많이 봐주기를 바래서였다.

김우진의 '난파'를 공연할 때 버나드 쇼의 이야기가 나왔다. 쇼가 말한 행복에 대한 부분을 이번 작품에서는 많이 떠올리게 되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늘 이상향을 꿈꾸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환청'이란 작품이 탄생한 것 같다.

Q. 향후 그림연극의 장기적인 계획이나 특별한 기획은 있나요?

A. 극단 그림연극은 작품을 창작하고 문화예술교육활동을 겸하고 있다. 이 부분은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11월 말에는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사업 '꿈꾸는 청춘예술대학'의 어르신 공연도 준비하고 있다. 어르신들에게 수업을 지도하고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도 재미있다.

내년에는 '환청' 공연을 다시 하고 싶고, 가능하다면 해외공연에도 출품하려고 한다. 그리고 다음 작품으로는 '로봇'을 생각하고 있다.

Q. 극단의 대표이시자 연출가, 작가, 연기자 등을 겸하고 계신데 이에 따른 애로사항이나 장점 등은 무엇이 있나요?

A. 연출과 연기자를 겸하고 있는 것은 사실 커다란 어려움은 없다. 내가 원래 한국에서 배우를 했었고, 독일에서도 연출과 연기를 다 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어려움은 없다. 그런데 몇 년간 연기를 안 하다 보니 내 자신이 게을러지는 것 같았다. 앞으로도 가능하다면 연출과 배우는 겸할 것 같다. 우리 극단의 작업 스타일이 연출이 구상하면 배우가 무조건 따라하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 의견을 내고 만들고 하기 때문에 연출과 배우를 함께 하는 게 어떤 때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내가 하는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연습 중에 비디오 촬영을 많이 한다. 그래서 서로 함께 모니터링하면서 체크하는 방식이 우리 극단의 작업 방식으로 점점 굳어지는 것 같다.

물론 작가라는 것은 정말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기존 작품의 드라마투르기는 많이 있었는데, 창작은 이것과 또 다른 부분이라... 또한 대표가 제작을 겸해야하기 때문에 극단 운영과 작품 창작에 대한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책임이 매우 어렵기는 하다.

Q. 노인이나 어린이 등 일반적인 연극 관람층이 아닌 관객 들을 위한 프로그램 편성이 눈에 띈다. 이러한 관객층에 특별히 신경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우연한 기회에 (재)서울여성의 여성문화예술지원사업으로 '여성을 위한 인형연극워크숍'을 개최하면서 인형에 대한 여러 계층의 관심과 활용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극단에서 여러 차례 개최했었던 '여성을 위한 인형연극워크숍'에는 연극인뿐만 아니라 교사, 상담사, 치료사 그리고 미술이나 영화 등 다양한 계층에서 관심을 갖고 수업에 참여했었다.

인형을 공부한 사람으로 또 다른 표현매체로서의 인형에만 관심이 있었는데 점차 교육, 치료, 심리 등과 관련하여 관심사가 넓어지게 되었다.